2007년 10월 01일
민노당 vs 문국현
민노당이 문국현에게 포문을 열었다.
문국현의 노선이 민노당 입장에선 굉장히 거슬리는 바, 민노당의 문국현 비난은 지극하게도 당연한 수순이긴 하지만, 바로 이 당연한 수순이 문제이다.
민노당은 아직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.
보들리아르는 1970년에 쓴 소비의 사회라는 책에서 이 시대는 모든 사회가 소비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지적한다. 이 소비 마인드의 영향력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, 우리의 사회관, 국가관을 비롯한 대다수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. 우리는 언론, 학교 교육에까지 소비의 관점을 통해 보고 있으며, 나아가 종교마저도 소비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. 그 결과 언론 기사, 선생님들의 교육이나, 스님의 설법, 목사의 설교마저도 Give and Take의 단순한 도식에 끼워맞춰진다.
이러한 소비자의 시선은 이전에 존재하였던 계급적 관점마저도 침몰시켰다. 기업과 개인의 관계를 보더라도 과거의 착취-피착취의 도식보다는 공급-수요의 도식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다.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FTA에 대한 시각이다. 우리가 피착취자의 입장을 취한다면, FTA에 대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옳다. 경제구조가 커짐에 따라 계급관계 역시 커지고 그 결과 소수의 가진 자는 이익을 보는 반면, 다수의 노동자들은 이익을 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.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FTA는 더 다양한 제품들이 보다 저렴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이득이 된다. FTA에 관한 기사의 글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소비지향적인지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.
소비자의 시각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.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며,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큰지는 차차 연구해봐야 할 부분이다.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소비적 관점이 정치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.
민노당은 "노동"의 당이며, 착취-피착취의 계급관을 받아들인 가운데 피착취자, 프롤레타리아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는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. 하지만 문국현이 가진 패러다임은 계급투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다. 문국현은 기업-소비자 관계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양심적인 기업가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. 정책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는 양심적인 정부의 이미지로 직결될 수 있으며, 이 점이 문국현이 설득력을 지니는 점이다. 어느 쪽의 시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. 하지만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문국현이 민노당보다는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.
민노당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계급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, 노동자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던가, 아니면 아에 당의 성격을 변화시켜서 민노당의 정책이 더 소비하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.
하지만 민노당은 시작이 잘못된 것 같다. 그들은 문국현이 FTA에 찬성을 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유 마저도 감을 못잡고 있는 것 같다. 양심적인 기업가의 이미지 자체를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. 민노당이여... 살아남으려거든 설득하라.
문국현의 노선이 민노당 입장에선 굉장히 거슬리는 바, 민노당의 문국현 비난은 지극하게도 당연한 수순이긴 하지만, 바로 이 당연한 수순이 문제이다.
민노당은 아직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.
보들리아르는 1970년에 쓴 소비의 사회라는 책에서 이 시대는 모든 사회가 소비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지적한다. 이 소비 마인드의 영향력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, 우리의 사회관, 국가관을 비롯한 대다수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. 우리는 언론, 학교 교육에까지 소비의 관점을 통해 보고 있으며, 나아가 종교마저도 소비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. 그 결과 언론 기사, 선생님들의 교육이나, 스님의 설법, 목사의 설교마저도 Give and Take의 단순한 도식에 끼워맞춰진다.
이러한 소비자의 시선은 이전에 존재하였던 계급적 관점마저도 침몰시켰다. 기업과 개인의 관계를 보더라도 과거의 착취-피착취의 도식보다는 공급-수요의 도식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다.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FTA에 대한 시각이다. 우리가 피착취자의 입장을 취한다면, FTA에 대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옳다. 경제구조가 커짐에 따라 계급관계 역시 커지고 그 결과 소수의 가진 자는 이익을 보는 반면, 다수의 노동자들은 이익을 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.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FTA는 더 다양한 제품들이 보다 저렴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이득이 된다. FTA에 관한 기사의 글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소비지향적인지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.
소비자의 시각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.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며,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큰지는 차차 연구해봐야 할 부분이다.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소비적 관점이 정치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.
민노당은 "노동"의 당이며, 착취-피착취의 계급관을 받아들인 가운데 피착취자, 프롤레타리아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는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. 하지만 문국현이 가진 패러다임은 계급투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다. 문국현은 기업-소비자 관계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양심적인 기업가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. 정책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는 양심적인 정부의 이미지로 직결될 수 있으며, 이 점이 문국현이 설득력을 지니는 점이다. 어느 쪽의 시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. 하지만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문국현이 민노당보다는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.
민노당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계급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, 노동자의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던가, 아니면 아에 당의 성격을 변화시켜서 민노당의 정책이 더 소비하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.
하지만 민노당은 시작이 잘못된 것 같다. 그들은 문국현이 FTA에 찬성을 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유 마저도 감을 못잡고 있는 것 같다. 양심적인 기업가의 이미지 자체를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. 민노당이여... 살아남으려거든 설득하라.
# by | 2007/10/01 17:58 | 트랙백 | 덧글(0)








